(한국안전방송) 국회에서 좌초될 뻔한 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여야 3당의 줄다리기 끝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20대 국회는 정부의 추경안을 심의 과정에서 증발시키는 첫 번째 국회가 될 뻔 했다. 그러나 여야의 극적인 막판 협상 끝에 추경안은 기사회생하게 됐다.
여야가 난산(難産) 끝에 25일 추경 처리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민생 대책이 담긴 추경안을 놓고 벼랑 끝 대치를 보였다는 점에서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거대 양당체제였던 19대 국회와 달리 20대 국회에서 형성된 3당 체제는 상충된 의견을 조정하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줘 의미 있는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 우여곡절 끝에 처리 합의된 추경안
당초 이번 추경은 국회 통과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추경에 부정적인 정부를 야당 정책위 의장들이 설득해서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은 3당인 국민의당이 제안해서 여야 정책위 의장들과 경제부총리 간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본격적인 편성작업에 돌입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추경 논의가 첫번째 암초를 만난 것은 추경안이 국회로 넘어온 직후다. 야당은 추경에 반드시 누리과정 예산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누리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추경 심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가까스로 합의가 이뤄졌다. 여야는 지난 12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중재로 8월 22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먼저 처리하고, 23~25일 조선 해운 산업의 부실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새누리당 김도읍,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 수석부대표. 이들 수석은 25일 추경안 처리와 청문회 개최를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청문회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온도 차가 컸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구조조정 책임이 있는 관계 부처, 기관 책임자를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며 이른바 ‘최·종·택’이라는 조어(措語)를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 대치로 추경 심사를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파행됐고, 22일 추경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23~25일 예정됐던 청문회도 무기한 연기됐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이 내년도 본예산에 흡수돼 사실상 추경이 철회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여야의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최·종·택’ 3명 중 일부를 증인 목록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나섰다. 더민주는 ‘최·종·택’ 중 한 명도 제외할 수 없다고 했다.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국민의당은 또 한번 카드를 제시했다. 8월 추경을 처리하도록 추경 심사와 증인 채택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자고 했다.
협상은 하루 만에 급물살을 탔다. 여야는 25일 하루종일 협상을 재개해 오는 26일 부터 예결위의 추경안 심사를 정상화해서 30일 국회 회의를 통해 추경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9월 8~9일에는 기재위와 정무위 연석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야당은 새누리당이 반대한 ‘최·종·택’의 청문회 증인 출석 요구를 거뒀고, 새누리당은 야당이 요구한 기획재정위와 정무위원회 연석 청문회 요구를 수용했다. 최악의 국면은 피한 셈이다.
◆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전부냐 전무냐)’ 아닌 양보하는 협치 모델
“돌맹이 던진다면 내가 맞겠다. 아프겠지만…”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4일 대전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8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과시키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최·종·택’을 반드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했던 주장을 철회하는 데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한 달을 끌던 여야 간 협상은 박 위원장의 발언 이후 물꼬가 트였다.
추경과 청문회를 위한 여야 협상 초기,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인 곳은 국민의당이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협상 국면마다 유연하게 입장을 바꿨다.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어느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전략이 아니라, 협상이 이뤄지는 데 초점을 맞춰 대안을 제시했다.
일례로 박 위원장이 추경 심사와 증인 채택 논의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한 직후 더민주 내부에서는 “국민의당에 제대로 당했다”는 탄식이 나왔다. 국민의당이 여당 의견에 동조하며 더민주를 압박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의당은 직접 주도한 추경안이 무산되는 경우 입을 정치적 타격을 우려했다. 추경 협상에 국민의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청문회에 현직 의원인 최 전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맡고 있는 안 전 경제수석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에 정치적 부담이 컸다. 국민의당의 여당 상황도 고려해 협상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이번 청문회가 아니라도 9월 정기국회나 국정감사에서 정부 책임자의 잘못을 따져볼 기회는 있다”며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여야의 협상 과정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3당 체제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중재자로 나서며 여야가 양보해 절충안을 만든 과정은 ‘협치 모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용호 국민의당 대변인은 “협의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소기의 성과를 이끌어낸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