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해빙무드가 본격화되면서 통신·건설·제조 부문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대북진출 채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2023년 인구감소가 시작되는 남한 시장의 한계상황을 감안하면 인구 2500만명인 개발도상국 북한은 기업들에는 ‘기회의 땅’이다.
대규모 인프라 건설 및 판매 시장이 열리는 셈이어서 신속하게 ‘초동대응’에 나선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인프라에서 건설 부문 시장은 수십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이 중 가장 먼저 재개될 사업으로는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도복원 사업이 꼽힌다.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부터 월정리역을 거쳐 북측 군사분계선까지 11.7㎞ 남측 구간 공사인데, 토지보상이 끝났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멈춰선 상태다. 남측 구간의 복원이 완료되면 향후 북한의 원산까지 이어진다.
대우건설 사옥 [사진=대우건설] |
컨소시엄 참여 업체 중 대우건설이 가장 적극적으로 대북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관련 전담팀을 신설할 계획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대북 제재가 풀리면 곧바로 사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의 움직임에 따라 속도감 있게 준비할 계획”이라며 “공공시장은 줄어들고, 부동산 시장과 해외시장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돌파구는 대북사업이 될 텐데 즉시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놓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의 신경망인 전력·통신 부문도 채비를 서두르는 분야 중 하나다. KT는 지난 10일 ‘남북협력사업개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정보통신기술(ICT) 교류 확대 및 경제협력 지원을 공식화했고, 28일 TF장에 경영기획부문장 구현모 사장을 임명했다. 이를 통해 통신망·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용회선·무선·클라우드 등에서 사업협력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향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이 재개되는 대로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또 국내 1위 종합전선회사인 LS전선은 전력·통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초고압케이블과 배전케이블, 산업용특수케이블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있다.
제조·유통 부문도 잰걸음 중이다. 과거 북한 진출을 추진했던 롯데그룹은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식품, 유통 등 계열사들과 대북사업 계획을 논의 중으로, ‘북방 TF’(가칭)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의 빵·과자 및 음료 제품을 수익성 차원에서 북한에 진출시키는 것을 비롯해 국제기구 등을 통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롯데는 1995년 북한 현지에 초코파이 및 생수공장 설립을 추진한 바 있고, 2008~2014년 개성공단에 총 122억원어치 초코파이를 납품하기도 했지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사업이 중단된 바 있다.
식품업계는 시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북한에 분유를 공급할 수 있다면 포화상태인 국내 우유 시장이 새 활로를 찾게 되는 동시에 북한 어린이 영양상태도 개선 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출산에 따른 시장 한계 때문에 그간 해외시장 개척에 눈을 돌렸던 기업들이 도로 운송이 가능한 새로운 시장의 개방은 매우 큰 기회”라면서 “북한 시장이 소득수준이 아직 높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 사옥(위), 금강산 만물상 전경(아래) [사진=현대그룹] |
현정은 회장이 직접 대북사업을 챙기고 있는 현대그룹은 최근 남북, 북·미 간 이슈가 급물살을 타며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개성공단 재개 등에 대비해 우선순위 로드맵을 구상 중이다. 예정대로 8월 중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될 경우 7월 중 현대아산 임직원의 시설점검과 운영을 위한 방북 가능성도 제기된다.
IT기업들도 동일언어 사용권인 북한 시장 개방에 기대가 크다. 네이버 관계자는 “북한의 시장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동일언어 사용권이기 때문에 검색포털로서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향후 경협이 구체화되고 IT영역까지 확대되면 지도서비스를 비롯한 사업 진출 가능성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외에 GS그룹과 한화그룹 등이 대북 제재 조치 완화에 따른 사업기회 아이디어를 모으고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업의 대북사업 진출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핵 문제 등 정치상황이 먼저 정리돼야 경제 분야의 개별 사업도 힘을 받을 수 있다”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남북관계의 특성상 기업이 벌써부터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