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전화번호 뿌리는데… 처벌 못 한다고?

2016.07.16 10:58:12

내 번호가 왜 여기에…
조건만남·장기매매 글에 내 전화번호 함께 올려서
전화·문자 '테러' 당해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 없어
경찰도 "도와줄 길 없다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경기 수원에 사는 진모(22)씨는 지난 3월부터 휴대전화 '테러'를 당하고 있다. 매일 새벽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전화와 수십통의 문자 메시지가 오는 것이다. '파트너 구했어요?' '오늘 1시쯤 어때요?' 등 낯뜨거운 문자 메시지와 음란성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진씨는 얼마 후 '범인'을 알게 됐다. 현재 사귀는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강모(24)씨가 앙심을 품고 진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오늘 밤 외로우니 전화주세요' '장기매매 하실 분 연락 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페이스북 등 SNS,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본 네티즌들이 공개된 진씨의 전화번호로 계속 음란성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씨는 두 달 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으나, 강씨는 이 전화번호도 알아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야한 문자와 함께 공개했다. 진씨는 화면 캡처, 문자메시지 등 자료를 모아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휴대전화 번호 공개만으로는 강씨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진씨는 4개월째 강씨가 퍼뜨린 전화번호를 본 익명의 남자들로부터 전화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지난 4월 회사원 황모(26)씨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새벽 2시부터 아침까지 '○○에서 보고 연락해요' '지금 만남 가능?' 등의 카카오톡 메신저 80여개가 쏟아져 들어왔다. 알고 보니 트위터 등 SNS와 랜덤 채팅 사이트에 누군가 "연락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황씨의 전화번호를 올린 것이다. 황씨는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도와줄 길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황씨는 "아직도 누가 그랬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번호를 외부에 공개해 상대를 괴롭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화번호를 이름·주소와 함께 외부에 공개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전화번호 한 개만 공개할 경우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소와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상대를 더 괴롭히는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상대편과 시비가 붙었다는 이모(34)씨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수백통의 카카오톡 메시지 공격을 받았다. 화가 난 이씨가 자신을 놀리는 상대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게 화근이었다. 당시 이씨는 상대에게 게임 도중 채팅을 통해 "직접 전화로 이야기하자"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하지만 상대방은 "고작 게임하다가 흥분하는 ○○"라며 이씨의 번호를 게임하는 네티즌들이 자주 찾는 게시판에 올렸다. 이날 이씨는 욕설과 조롱이 섞인 문자를 받아야 했다. 또 이씨의 번호를 퍼뜨린 그 사람으로부턴 "어차피 이것 가지고는 고소도 못 하는 거 알고 있느냐"는 메시지도 받았다. 욕설 문자는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이씨는 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경찰은 "욕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면서도 "이씨의 전화번호를 공개 게시판에 올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욕설을 유도했더라도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건 원인 제공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 네티즌도 "나도 모르게 익명 게시판에 내 전화번호를 올린 뒤 몰래 지우는 수법으로 여러 번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며 "어느 게시판에 내 전화번호가 유출됐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서울 한 경찰서 관계자는 "일주일에 두세 명꼴로 이와 비슷한 사건을 고소하고 싶다고 찾아오지만 경찰서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해자에게 전화해 경고하고 타이르는 것뿐"이라며 "수사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특정 수신 번호를 차단할 수는 있지만 수백통의 메시지를 통신사 차원에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전화번호 교체 외에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 leeck643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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