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
우리는 이순신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임진왜란은 영웅 이순신이 승리한 전쟁이 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어떨까? 역사적 사실은 당연히 이순신은 그저 인간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배 한 쪽 구석 등에서 웅크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두려워서 그랬다. 원균을 험담하는 얘기도 엄청 많다. 원균 외에 선조와 류성룡 빼고 권율 등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는 얘기도 나온다. 수군통제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얘기를 일기에 토로하며 풀었다.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런 것이다. 1597년 4월 백의종군 이후 죽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 이순신이 영웅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승리한 것인가?
객관적으로 보면 이순신이 있어서 승리한 것이 아니다. 이순신의 전공을 인정하지만 이순신이 제해권을 장악해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한 것도 아니었고 일본군이 물러간 것도 이순신 때문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어서 물러간 것이다. 만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지 않았다면 적어도 한반도 남쪽은 계속 일본이 점령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순신은 1597년 봄 한달여간 투옥 전과 후가 천양지차처럼 다른데도 일반적 인식은 그것을 놓치고 있다. 출옥 후 원균이 패전해서 다시 수군통제사로 복귀했고 명량해전에서 대승했기 때문에 진실이 가려졌다. 객관적 사실은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했지만 그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예전의 한산도 진영을 회복하지 못하고 완도에 머물러야 했고 선조와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왕조시대에 신하가 왕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이순신은 그나마 영의정 류성룡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이순신은 출옥 후 1년 8개월을 그렇게 힘들게 버티다가 노량해전에서 사망했다. 우리는 이순신을 영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순신이 그렇게 희망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이제 역사적 사실에 따라 이순신을 인간으로 봐야 한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느껴야 했던 인간적 갈등과 고뇌, 고통과 감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순신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매번 전투에 최선을 다했고 전쟁이 끝날 때 죽어야 하는 운명의 길을 담대하게 걸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이순신의 위대한 점이다. 오늘날 이것이 우리가 이순신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글 출처 정재룡 칼람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