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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518을 헌법전문에 실어서는 않된다

- <<5.18을 헌법전문에 실어서는 안된다 >>

 

필자는 1980년 5월 18일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 두 눈으로 본 진실에서 후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5.18을 함부로 미화시키거나, 근거없는 업적으로 가공하거나, 팩트없이 비난하는 행위를 용서한 적이 없다.

 

필자가 5.18을 '역사 속으로 보내자'는 이유가 있다. 5.18단체와 광주시가 제아무리 권력을 동원하여 5.18특별법으로 보호막을 친다 하여도, 5.18 안으로 한 걸음만 들여다 보면 의문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5.18에 관련된 의문에 5.18을 헌법전문에 실어서는 안된다 -

 

필자는 1980년 5월 18일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 두 눈으로 본 진실에서 후퇴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5.18을 함부로 미화시키거나, 근거없는 업적으로 가공하거나, 팩트없이 비난하는 행위를 용서한 적이 없다.

 

필자가 5.18을 '역사 속으로 보내자'는 이유가 있다. 5.18단체와 광주시가 제아무리 권력을 동원하여 5.18특별법으로 보호막을 친다 하여도, 5.18 안으로 한 걸음만 들여다 보면 의문이 산더미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만약 5.18에 관련된 의문에 단 한가지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5.18이 헌법전문에 실려야 한다면, 우리는 쏟아지는 의문부터 풀어야 할 것 아닌가.

 

지금까지 6.25 이후 대한민국 현대역사에서 선량한 민중이 무기고를 털고 무장한 일은 없었다. 4.19 때도 경비대장 곽영주의 총질에 분노는 하였어도 무장은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문이 일어나는 것이다. 

 

- 아니, 왜 무기고를 턴 거여? 버스에 밀리고 치인 공수부대원이 발포했다고 해서, 그것도 46개나 무기고를 털어? 좋다. 분노 때문에 무기고를 털었다치자. 그런데 털어서 왜 길거리에 풀어놓은 거여? 아무나 가져가서 총 쏘라는 거 아니었어? 무기 중에 수류탄도 있잖아. 이거 북한공작원 짓이 아니면 뭐여? 폭동 일으키란 말 아니여? 그리고 죽은 시민 중에 칼빈이나 M1에 의해 죽은 사람이 많다고? M16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칼빈으로 쏘았다는 말이 맞아? 그리고 총기반납을 왜 거부해? 심지어 미국이 5.18 진압하라고 허락했다고야? 그리고 반미운동을 벌여? 오메, 이석기랑 추미애도 유공자였구나? 도대체 어떻게 유공자가 된 거야, 공적이 뭐여? 우리더러 이석기 추미애 받들고 살라는 얘기여? 최근 여직원하고 칸쿤 놀러간 정원오도 유공자여? 환장하겠네. 그러니까 정원오 포함해서 깜깜이 비공개 유공자가 1400여명이나 된다는 거지? 이거 다 보상해 준 거 맞지? 국민세금으로? 국민세금으로 보상해줬으면서도 감추는 거여? 처음엔 불과 3~4000명이던 유공자가 15000명이나 된 이유가 뭐여? 해마다 늘어나? 무려 1만여명이나 늘어났단 말이지. 그러면서 유공자 공개를 못해? 우리 국민은 몰라도 되는 개돼지여? -

 

다시 한번 묻자. 우리 국민은 몰라도 되는 개돼지인가!

 

그리하여 이 수많은 의문들에 답이 찾아지기 시작하면, 5.18은 분명 수많은 상처를 입고 쓰러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그만 묻어두자'고 하였던 것이다. 더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더이상 국민을 적으로 두지 말고, 가짜유공자 더이상 만들지 말고, 그만 조용히 고요 속으로 들어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5.18은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마져 통제하려 들고, 오만에 빠져 자신들이 마치 구국의 영웅인양 착각 속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특수군 혹은 공작원이 침투해서 이 사태를 확장시킨 혐의에 관해, 5.18은 필사적으로 부정에 나서고 있었다.

 

5.18 북한특수군 침투는 수많은 정황증거를 볼 때, 개연성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증명할 수 없다 해서 혐의까지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잠수함을 타고 목포에 들어온 북한공작원 침투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확인할 수 없기에 생략하고 있을 뿐이다.

 

무장공비 남파부터 테러, 대통령 암살시도, 수많은 고정간첩들의 준동까지 북한의 공작은 수없이 있었다. 무려 30만건이라는 국방백서 보고도 있다. 그러므로 이는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서 집행되는, 중단할 수 없는 'Standing Oder'라는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적화통일은 김일성의 필생의 사업이었고 꿈이었다. 그리하여 남파공작은 일상적인 사건의 연속이었고, 그만큼 집요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저질러온 수많은 사건에서 간첩행위의 전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침투 목적으로들어온 북한잠수함이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일도 있었다. 따라서 북한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은 없다는게 필자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사북사태는 5.18 약 한달 전에 발생한 사태이다. 1980년 4월 21~24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주) 사북광업소 광부들의 총파업을 일으킨 사건이다. 그들은 동원탄좌(주)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노동조합의 어용성 및 유신체제의 해체와 민주화 요구가 그 배경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사북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월급은 월평균 155,000원에 불과했다고 강변했지만, 그러나 이 월급은 당시 일반공무원이 약 5만원을 받았음에 비춰볼 때, 무려 3배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월급에 불만이 있을 수 없었다.

 

1980년대 라면은 하나에 100원, 버스비 100원, 소주 200원, 짜장면 500원이었다. 따라서 탄광노동자들 수입은 중산층 수준이었다. 거기다 위험수당까지 포함하면 탄광노동자들의 월급은 일반 공무원의 네배 수준이었다. 당시로선 최고의 보수였다.

 

이런 광부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못배운 탄광노동자들이 정치성을 띤다는 것은 수준과 노동운동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특히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은 북한공작원의 선동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일이었다. 

 

지금 이 사북사태는 민주화운동이 되어 있다. 그들은 보상을 받았고 유공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북탄광 사태 바로 한달 후에 5.18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탄광촌에서 일어난 사북사태 역시 배경에 북한이 있음을 추정케 하는데, 대규모 시위사건이 일어난 광주를 북한이 가만 두고 보았을 까닭이 없다. 더구나 박정희 사후(死後) 혼란이 극심했던 시대를 북한이 남침을 위한 호기(好機)로 삼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공작의 첫번째가 유언비어 확산이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청년들 죽이고 있다는 유언비어 아니었으면, 광주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역감정을 이용한 이 비열한 유언비어 선동을 누가 저질렀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5.18진압을 미국이 허락했다는 루머를 통해, 5.18을 반미운동으로 발전시킨 자들이 누구였다고 생각하는가.

 

2000명 사망? 그래서 구(舊)교도소 자리까지 파헤쳤으나 나온 시신은 없었다. 사망자는 모두 166명이었다. 그것도 탈취된 무기, 즉 카빈과 M1에 의한 다수의 사망이 있었다. 2000명 사망? 이 또한 유언비어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선전과 선동, 유언비어를 광주시민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록 광주 5.18에 북한공작원들이 침투해 왔다고 하더라도, 광주시민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특히 북한이 개입하여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확산시킨 일은 광주시와 5.18단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비록 북한특수군들이 침투해서 광주시민을 향해 총을 쐈다고 하더라도, 광주시민들은 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광주시민들이 북한군이 와주기를 바랐거나 요구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에 의해 광주시민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 진실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특수군이 5.18에 개입하여 사태를 비극으로 이끌어 갔다 하더라도, 5.18은 북한의 행위에 책임이 있을 수 없다. 북한공작은 늘상 있었던 일이고, 5.18도 사북사태와 같이 적화를 위한 이용물 중 하나였다 판단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문제는 통일 이후에나 정확히 밝혀질 것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5.18단체가 북한공작원 개입설을 앞장서서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5.18과 광주시민들이 요구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북한군 개입에 대해서, 5.18 단체와 광주시민들은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 누가 뭐라고 하면, 당당하게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군을 요청한 적이 없고, 그들과 합세하거나 불러들인 일도 없다. 설사 북한군의 공작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북한의 소행이자 책임이지, 5.18과 광주시민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

 

이렇게 답하고, 북한군이라는 족쇄와 트라우마로부터 당당하게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5.18을 역사속으로 묻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필자는 5.18에 관한 모든 논란을 접고, 5.18을 역사 속으로 묻어주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더이상 5.18은 상처를 입어서는 안된다. 특히 가짜유공자 문제로 인해, 갈수록 그 정당성이 사라지고 흠결만 드러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5.18 헌법수록을 지지한다 했다. 그러나 필자 정재학은 절대 반대한다. 대통령보다 힘이 셀 수는 없으나, 이것이 정의다.

 

그래서 또다시 묻는 것이다. 5.18에 관한한 우리 국민들은 의문을 품어서도 안되고, 물어서도 안되고, 따져서도 안되는 개돼지로 살아야 하는가 !

 

2026. 4. 3.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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