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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바로보아야 하며 되풀이 된다.

역사는 바로 보아야하며 되풀이된다. 

110년전 친일파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와 트럼프의 딸 이방카의 한반도 방문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기게 되는 을사늑약 두 달 전인 1905년 9월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21살 딸로 '워싱턴 사교계의 공주'로 불리던 앨리스 루스벨트가 인천항에 도착했다.

당시는 열강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화했던 때다.

이야기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견한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 80여명이 1905년 7월 5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하던 날에서 시작된다.

사절단은 그때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고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대한제국을 거치는 긴 여정이었다. 미국이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세계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도록 만들기 위한 원정대(遠征隊)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후임으로 제27대 대통령이 되는 육군장관 태프트를 비롯하여 상원의원 7명, 하원의원 23명과 다수의 군인 및 민간 관료들이 배에 타고 있었으며 기자들도 동승했다.

이 ‘제국주의 순방’imperial cruise을 통해 루스벨트는 앞으로 수세대에 걸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루스벨트는 약소국을 향해 미국의 힘을 휘두른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몽둥이 철학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면서 루스벨트가 추구했던 정책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루스벨트)가 휘두른 몽둥이가 남긴 상처들은 태평양에서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중국 공산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긴장사태들을 일으킨 불씨가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아시아 외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남긴 궤적을 따라갔다.

100년만에 드러난 미일제국주의의 추악한 밀거래

결과적으로 한일늑약 한일병탄은 백인우월주의자 루스벨트와 가쓰라 일본 총리, 태프트 미국 육군장관의 극비 합작품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 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예를 들어 한국민의 은인으로 불리는제중원( 濟衆院) 의사 알렌 공사는 루스벨트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기 위해 보낸 척후병이라는 사실도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루스벨트는 대한제국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 계획에 파란불을 켜 주었으며 수십 년 뒤에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전임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의 결과로 빚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저자는 단정한다.

앨리스 일행은 9월 19일 서울에 도착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요지의 포츠머스조약이 9월 5일에 체결된 날로부터 2주일 뒤였다.

일본은 한국 지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상태였고 한반도 침략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두 달 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한다.

한국은 이런 사실도 모른채  밀사를 보내는 등 미국 대통령에게 대한제국의 독립 유지를 애타게 호소한다. 루스벨트는 일본에게 한국이 식민지 상태로 빠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편지를 은밀하게 보냈다.

고종 황제는 구원의 천사가 왔다며 앨리스를 극진히 대접했다. 앨리스가 지나갈 도로는 미리 보수했고, 황제 전용열차를 내줬으며 황실 가마에 태워 왕릉을 관람까지 시켰다. 황실악단이 미국 국가를 연주했고 떠날 때에는 각부대신들이 남대문 정류장까지 나와 직접 배웅을 했다.

이방카 방한은 앨리스와 너무 닯았다 

11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시 '미국 공주'라 불릴 만한 인물이 한국을 찾는다.

당장 이방카 고문의 입국 순간부터 일반적인 관행을 뛰어넘는 의전이 예상된다. 우리 측 고위급 인사가 직접 영접하고 경호도 경찰 대신 청와대 경호처가 맡는 등 국가 정상에 준하는 의전을 검토 중인 걸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이방카 고문에 대해 이런 특별 예우를 준비하고 있는 이면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바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지지'다.

그런 점에서 이방카 고문은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이방카 고문의 영향력은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은 지난해 4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의 시리아 폭격은 누나 이방카의 반응이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방카 고문을 겨냥한 외교전은 다른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11월 방일 때 아베 총리가 직접 관련 행사부터 만찬과 생일을 챙겼다.

인도도 같은 달 인도를 찾은 이방카 고문을 위해 모디 총리가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상급 의전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110여 년 전과 너무 닮았다 . 비극을 되풀이 하지는 말자 

110여 년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모두 외교 안보적 위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똑같다. 각국의 상황과 여건이 완전히 다르기는 하지만 얄궂게도 일본이 연계돼 있는 점 또한 비슷하다.

110여 년 전 열흘간 서울, 대구 부산 등을 돌아보고 귀국길에 오른 앨리스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감명은 없었고 황제가 서글프고 애처로웠다"고 말했다. 미국의 속내는 고종의 간절한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이미 앨리스 방한 두 달 전, 자신들의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받는 대신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인정한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현재 상황은 어떨까?
미국과 일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찰떡 공조'다. 공통의 견제 대상인 중국 때문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북핵 문제 해법을 놓고 때때로 긴장 국면을 맞는 한·미 관계보다는 공고해 보인다.

하나의 다른 변수는  이방카 고문의 인식이다. 지난해 2월 일본 아사히 신문은 총리 관저 관계자를 인용해, 며칠 전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이방카 고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는 매우 영리한 사람이다. (동북아 외교 안보에서) 따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측 보도인 만큼 가려들어야겠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공고한 미·일 관계, 여기에 더해 미국이 동북아 정책에서 일본의 조언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강경 메시지를 쏟아낸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평창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우연히' 함께 지각 등장한 것도 이런 불안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루스벨트가 뿌린 재앙의 씨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임페리얼 크루즈’는 대한제국의 운명에 관련된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본군의 진주만 침공으로 시작된 끔찍한 태평양전쟁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 기원을 찾는 작업이 책을 쓴 직접적인 동기였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태평양을 무대로 펼친 외교정책에서 신흥 제국 일본에게 한국을 식민지화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역사 전개 논리다. 책의 중요한 핵심 내용이 110년 전 한국의 운명에 관한 부분이라고 보는 이유다.

루스벨트는 ‘무력한’ 나라들은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지닌 루스벨트와 태프트는 2인 1조로 한 팀이 되어 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게 될 전쟁이 태평양에서 일어나도록 파란불을 켜 주었던 것이다.

대한제국의 허망한 최후

고종은 순진하게도 루스벨트를 한국을 구원할 구세주로 착각하였으나 루스벨트는 철저하게 일본 편을 들었다.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걸 보고 싶다는 것이 루스벨트의 진심이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으며 강력한 군대와 유능한 외교관을 양성하지 못했던 대한제국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책이나 기념비, 영화, 우표에는 진실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성냥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다이너마이트에만 관심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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