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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신뢰인 인간 "유일한 박사"비화록

.       

   <<<<유일한 박사의 비화>>>>
한국에서 기업가에 대한 시선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닙니다. 사실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합니다. 
갑질 논란이라든지 탈세라든지, 
혹은 재벌 세습이라든지, 뭔가 탐욕스런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가가 몽땅 자본주의의 돼지는 
아닙니다. 
양심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도 계시지요.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대한민국 제약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유일한 박사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는 평양 태생으로 아버지 유기한은 재봉틀 가게를 
운영하던 분입니다. 
유기한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는데,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 유일한을 유학 보내지요. 
유기한은 자식들이 넓은 식견을 가져야만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905년, 
고작 9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넘어간 유일한은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서 공부하지요.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공부를 나름 잘 했는지 유일한은 미시간 대학교에 입학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일화가 좀 흥미로운데, 그는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뛰며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습니다. 

미식축구는 근육머신들이 치고 받으며 진행되는 남자 
냄새 물씬 나는 스포츠입니다. 
평균적으로 체격이 작은 동양인에게 맞는 운동은 
아니지요. 
더군다나 당시 사진을 보면 유일한의 포지션은 라인맨, 
그것도 센터입니다. 
라인맨은 후방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 방패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보통 몸 좋은 걸로는 안됩니다. 
그 중에서도 센터는 쿼터백 등과의 연계가 중요하기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 주로 하지요. 
물론 장학금 받으려면 공부도 잘해야 하고요. 

대학 졸업 후에는 당시 굴지의 대기업인 
‘제너럴 일렉 트릭’에 취직합니다. 
이곳은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회사로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안 유명하지만 나름 얼마 전까지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세 손가락에 들던 회사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아메리칸 드림 실현입니다. 
유일한은 이것으로 만족 못했는지 3년 뒤 회사를 나와서 
미국 내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숙주나물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존 숙주나물 병조림 대신 통조림을 생산하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설립해서 대박을 치지요. 

이 회사는 지금도 미국에서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1925년, 
성공한 사업가로서 귀국한 유일한은 식민지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아버지 유기한은 유학 보내놨더니 고작 숙주
나물이나 팔고 있냐면서 아들을 꾸짖었지요. 
결국 유일한은 미국 내 사업을 다 팔아치우고 서울에 
유한양행을 설립합니다. 
유한양행은 당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결핵약,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안티푸라민 같은 것을 싼 값에 
판매했지요. 

부인인 호미리 여사(중국계 미국인) 또한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유일한은 기업가 뿐 
아니라 독립운동 경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1940년부터 미국에 넘어가 여러 활동을 펼쳤지요. 
대표적인 것이 미국 OSS(CIA의 전신) 주도 아래 
이뤄지던 ‘냅코작전’입니다. 
냅코작전은 재미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 시키려던 계획이었지요. 

물론 강도 높은 군사훈련이 동반되는데, 
몸이 워낙 좋았지만 이 훈련을 받던 유일한의 나이가 
무려 50이었습니다. 
냅코작전은 일본이 예상보다 빠르게 항복하여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일한이 여기에 참여했다는 것도 본인이 
이에 대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수십 년간 알려지지 
않았지요. 
이 사실이 밝혀진 건 1993년으로 미국의 기밀문서가 
해금되어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겁니다. 

#유일한(유일형, 1895. 1. ~ 1971. 3. , 평양)
둑립운동가, 기업인

해방 이후에도 유한양행은 굴지의 제약업체로 계속 잘 
나가다가 한 번 위기가 있었지요. 
3공 때 정부가 각 기업들에게 정치자금을 내놓으라고 
했으나 유일한은 성격상 당연히 정치자금 주는 것을 
거절합니다. 
이에 정부는 기업을 족치는 도깨비방망이, 세무조사를 지시합니다. 처음에는 예고하고, 다음에는 불시에 
검사하는 등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여러 차례 있었지요. 

이때 일화가 전설적인데, 국세청에서 털고 털고 아무리 
털어도 탈세 내역이 안 나오는 겁니다. 
세무조사란 게 고의 탈세가 아니더라도 영수증 관리만 
잘못해도 걸리는 거라 세무조사에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없습니다. 장준하도 정부의 세무조사를 견디지 못하고 
폐간한 바 있지요. 
오히려 유한양행을 조사하니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세금까지 내고 있는 사실이 발견되어 조사원이 혀를 내 
둘렀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기업이라면 오히려 
상을 줘야 마땅 하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유한양행은 1968년에 모범납세 법인으로 선정되어 동탑산업훈장을 수여받습니다. 
유한양행은 대한민국 최초로 전문경영인(CEO) 제도를 
실시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유일한은 노환으로 그만둘 때 평사원 출신인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재벌세습을 안했습니다. 
심지어 퇴임할 때 유한양행에 다니는 자기 가족들도 
죄다 잘라버려서 군말이 안 나오도록 했지요. 

이 전통은 현재까지 유지되어서 전임대표이사 
(2009~2015)인 김윤섭 前대표도 평사원 출신이고 
이정희 대표이사도 평사원 출신입니다. 
게다가 ‘대표이사는 1회만 연임(최대 6년)이 가능
하다’는 조항까지 넣어놔서 한 사람이 오랫동안 
경영권을 쥐고 흔들 수 없게 만들어 놨습니다. 
김윤섭 前대표가 제약계 최초로 1조원 매출을 
올렸음에도 2015년에 물러난 건 이 조항이 있기 
때문이지요. 
유일한은 최후까지도 올바른 기업가의 모습을 몸소 
실천 하셨습니다. 

손녀의 대학등록금으로 쓸 1만 달러와 묘지 주변의 
땅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유언을 
남겼고, 그가 기부한 재산은 407억 원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뭔 대기업 회장 전재산이 이렇게 적냐고요?
유박사가 타계한 1971년 기준 407억 원이면 무지막지 
한 돈입니다. 
"참고로 유일한의 유족들은 저 1만 달러도 안 받겠다고, 
그리고 유한양행 퇴사할 때 받은 퇴직금이 너무 많아 반환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소송까지 거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글이 칭찬일변도 같은데 조사하고 조사해도 깔게 
안 나오고 굳이 흠이라면 1940년대 유한양행 사장으로
있던 동생 유명한이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것 
정도일까요. 
미국에 있던 유일한은 이 사실을 듣고 
"나는 동생 유명한은 둔 적은 있어도 일본놈 
야나가하라 히로시(유명한의 창씨개명)라는 놈은 
모른다!"라고 말하며 연을 끊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 많은 분입니다. 
현재의 기업가들도 하지 못한 일을 40~50년 전에 
실천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 <<<유일한 박사의 명언>>>>

국가, 교육, 기업, 가정 이 모든 것은 순위를 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제들이다.
그러나 나는 국가, 교육, 가정의 순위가 된다. 
나라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것을 신성한 말로 
서약하여야 한다.

기업은 한 두 사람의 손에 의해서 발전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두뇌가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발전되는 
것이다.
기업의 제1목표는 이윤의 추구다. 
그러나 그것은 성실한 기업활동의 대가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기업활동을 통한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 
하여야 한다.
기업의 기능이 단순히 돈을 버는데서만 머문다면 
수전노(守錢奴,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쓰지 않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와 다를 바가 없다.
기업으로 해서 아무리 큰 부(富)를 축적했다 할지라도 
죽음이 임박한 하얀 시트에 누운 자의 손에는 한 푼의 
돈도 쥐어져 있지 아니하는 법이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사람과 돈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만나서 일체가 되어 일을 할 때 거기에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진다.

죽음을 눈앞에 보는 연령이 되면 누구나 결국은 자기
자신이 평범한 한국인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람은 죽으면서 돈을 남기고 또 명성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값진 것은 사회를 위해서 남기는 
그 무엇이다.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실패, 그것으로 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면 실패 그것은 이미 나의 재산인 것이다.

하나의 인간은 체구를 가지게 되며, 그 몸에는 귀, 눈, 코, 
입 등의 여러 기관이 부수되어 있다.
그 중 하나의 기관만 없어도 완전한 인간일 수는 없다.
사회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러 사람이 각기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 기관의 구실을 
다 할 때 비로소 그 사회는 완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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